수사를 받는 요령




1. 소환 통보


서울중앙지검 금태섭 검사의 '수사받는 법' 기고가 지난달 한 일간지를 통해 나간 후 독자.네티즌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현직 검사가 직접 썼다는 형식 때문에 불필요한 논란과 기고 중단으로 이어졌지만 형사소송 절차에 대한 일반인의 지식은 거의 전무한 상태라는 점에서 금 검사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며 네티즌 독자들의 아쉬움도 컸다.

지은 죄만큼만 벌을 받기 위해 헌법에 보장된 자기방어권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제대로 수사받는 기본 지식을 취재했다. 검사 출신 30 ̄40대 변호사 등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며 수사받는 법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 2004년 사기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됐던 주모씨. 시종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18개월의 옥살이 끝에 출소했다. 그는 지난달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점을 국가에서 인정해 보상(형사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수감 중 그가 운영하던 업체는 도산했고 부인과도 이혼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사 건의 발단은 경찰서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였다. "사건 경위를 알아야겠으니 잠시 다녀가시라"는 짧은 통보였다. 무슨 일로 가야하는지 물어봐도 "일단 와 보면 안다"는 위압적인 말만 들었다. 이어 경찰 수사관은 "대단한 일은 아니니 편하게 오시면 된다"며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별일 아닐 거라며 집을 나섰던 그는 10일 뒤 구속됐다.

이같이 수사기관에서 소환.임의동행을 요구할 때 당황한 나머지 자신의 법적 이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검 찰 출신 L변호사는 "주씨는 수사기관에 대한 초동 대응이 전무했다"고 지적한다. 혐의 내용도, 소환되는 신분도 몰랐다. 또 구속되기 전 10일 동안 조사와 귀가 조치를 반복하면서도 수사관이 "별일 아닐 것"이라며 달래자 변호사를 찾지도 않았다.

L 변호사는"어떤 혐의와 신분으로 자신을 소환하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최소한의 법적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L변호사는"주씨는 자신에 대한 혐의와 신분 상태를 모른 채 수사기관에 출석했다"며 "팀으로 움직이는 프로들의 링에 아마추어가 단신으로 뛰어든 격"이라고 말했다. 수사기관에서 출석을 요구할 때 통보를 받는 사람의 신분은 피의자 또는 참고인이다. 수사기관으로부터 처음 소환통보를 받는 일반인들은 자신의 신분이 피의자인지 참고인인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

형사소송 법상 피의자는 '죄를 범한 혐의로 수사기관의 수사대상이 되어 있는 자로서 아직 공소(公訴)가 제기되지 않은 자'로 규정돼 있다. 참고인은 '범죄 수사를 위하여 수사 기관에서 조사를 받는 사람 가운데 피의자 이외의 사람'이다.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주요 인물(피의자)을 수사기관에서 부를 땐 반쯤은 사법처리를 의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인은 피의자의 혐의 유무를 판단하는 데 참고가 될만한 진술 또는 증거를 제시해주는 사람이지만 수사과정에서 피의자가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참고인이라는 이유로 수사과정에서 방어를 소흘히 하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수사기관의 소환 통보에 대한 초동 대응은 재판까지 이어지는 형사소송과정에서 첫 단추를 꿰는 매우 중요한 단계다. 어떤 대응이 최선일까. 검사 출신 K변호사는 "전화로 소환 통보를 할 땐 어떤 신분으로 부르는지, 관련 혐의는 무엇인지 등을 담은 '출석요구서'를 보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중대 사안인데 우물쭈물해선 안된다"며 "왜 가야 하는지 물고 늘어져 자신의 법익을 지킬 것"을 강조했다. 서초동의 S변호사는 "생업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소환에 응하겠다고 정중하게 의사를 전달하면 시간도 조정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수사기관의 요구를 군말 없이 따라주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것이란 선입견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K변호사는 "수사기관의 전화 통보는 동사무소나 은행에서 오는 전화와 같을 수 없다"며 "위압적이거나 다소 퉁명스럽더라도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사를 받는 것은 프로와 싸우는 일이란 걸 잊지 말고 반드시 왜 출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을 듣도록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 석요구서를 받거나 혐의 내용 및 소환 성격을 알게 되면 바로 변호사를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향후 변호사 선임을 고려, 무료로 상담해주는 곳이 많기 때문에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 금태섭 검사도 신문 기고에서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유능한 변호인을 선임하라"고 조언했을 정도로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은 초동 단계에서 꼭 필요하다.

검사 출신 P변호사는 "굳이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주변의 법조계 인사들에게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대해 알리고 조언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S변호사는 "경찰관들은 검찰에서 소환하면 반드시 주변 법조계 인사나 변호사를 찾아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대처 방안을 상의한다"며 "이런 게 법 상식"이라고 말했다.

P변호사는 또 "변호사를 끼고 사는 정.재계 거물급 인사나 수사를 많이 받아본 전과자들은 수사기관과 관련되는 일이 생기면 크든 작든 상관없이 변호사부터 찾는다"고 설명했다. '병에는 의사이듯 법에는 변호사'라는 인식을 생활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K변호사는 "변호인은 전문가다. 수사기관에 소환 경위에 대해 간략하게라도 문의할 수 있다"며 "수사기관의 설명을 들어보면 변호인은 사건의 윤곽을 그릴 수 있어 법익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2. 체포될때


#뇌물수수 혐의로 긴급체포돼 실형을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8개월간 옥살이를 했던 경찰서장 출신 A씨. 그는 2년여의 항소.상고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집무실에서 검찰 직원들에게 강제연행될 때 "체포 영장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부하 직원들 앞에서 망신당하지 말고 조용히 가자"는 등의 위압적인 언행이 쏟아졌다고 한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A씨는 소환 이유를 밝혀줄 것을 요구하며 버텨봤지만 굴욕적인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검찰 직원들을 따라 나섰다. 그는 2일만에 구속됐다.

A씨는 임의동행 형태로 검찰에 소환됐다. 임의동행의 '임의(任意)'는 법규정상 피조사자의 승낙 또는 동의 아래 동행한다는 의미다. A씨는 명확히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규정상 합법한 행위다. 하지만 현실 상황은 수사기관의 편의 위주로 운영된다. 인권 보호의 사각지대로 늘 지적받아 왔지만 검찰 등 수사기관의 내부 수사지침상 수사를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된다. 또 형사소송법에도 긴급체포의 요건을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 등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임의동행을 거부할 땐 포괄적 해석에 따라 긴급체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수사 전문가인 현직 경찰서장조차도 속수무책으로 소환에 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A씨는 어떻게 대처했어야 했을까.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영장 제시를 끝까지 요구하며 실낱 같더라도 적법 집행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P변호사는 "A씨는 사안의 엄중성을 간과했다"고 말했다. 경찰서장쯤 되는 인사라면 검찰에서 최소한 관련 진술 정도는 확보한 뒤 강제소환에 나선다. 하지만 혐의를 입증할 만한 물증이 확보된 상태였다면 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절차를 밟았을 것이라는 것. 따라서 섣불리 자포자기하지 말고 임의동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A씨는 주변의 시선과 명예 실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체포영장에 의한 합법적인 집행을 강하게 요구하지 못했다. 그는 제대로 방어권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잡아보지 못한 채 수사기관 주도의 일방적 조사를 받은 뒤 구속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재판 전후 과정을 기록한 수기(手記)에서 "인신이 구속되고 나니 나의 진술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를 제대로 수집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S변호사는 "엄격한 형사소송법상의 절차를 지킬 것을 '강단있게' 요구하는 것만이 자신의 법익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어책"이라고 말했다. 경찰 등 수사기관에선 임의동행 요구를 할 때 수갑을 보여주면서 은근히 위압감을 조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S변호사는 지적했다. 그는 "임의동행 상태에선 수갑을 채울 수 없지만 일반인들은 수갑을 보면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돼 동행 요구에 순순히 응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체포된 뒤에는 빠른 대처가 요구된다. 통상 수사기관은 임의동행 형식으로 신변을 확보한 뒤 6시간 이내에 정식으로 긴급체포를 한다. 이 때부터 수사기관에 주어진 조사 시간은 48시간이다. 이 시간에 수사의 밑그림과 윤곽이 70% 이상 그려진다. 수사기관.피조사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혐의의 상당부분을 밝혀내 구속시키지 못하면 풀어줘야 하는 수사기관 입장에선 혐의 입증에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프로가 아마추어를 상대로 있는 힘을 다해 진지하게 맹공을 펼치는 것이다. 피조사자 입장에선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인 것이다. 이 때는 신속하면서도 침착하게 변호사 선임을 요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P변호사는 "병도 알려야 빨리 치료 받듯이 가족 및 지인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려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K변호사는 "변호사 선임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기 때문에 변호사가 와서 접견할 때까지는 아무 말 말고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S변호사는 "일부 수사관들은 빨리 자백하지 않으면 긴급체포하거나 구속하겠다고 직.간접적으로 위협하는데 이것은 명백한 위법"이라며 "어렵겠지만 평정을 유지하며 변호인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 뒤 수사에 임해야 한다" 덧붙였다. [이지은 기자]









3. 압수 수색 받을때 


 

J-Only
#2003 년 현금 절도사건의 참고인으로 경찰서에 불려간 정모씨. 조사과정에서 과거 공문서 위조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피의자가 됐다. 경찰은 강도 높은 조사 끝에 압수수색을 해야겠다며 이튿날 새벽 2시 수색영장을 받지 않은 채 정씨 집으로 향했다. 정씨는 "내가 피의자가 된 경위와 압수수색 영장을 보여달라"고 항의했지만 오히려 현금절도사건과 연관성을 추궁당했다.



상황1. “거짓말은 안돼요”
압수수색 영장이 없으면서도 영장이 있다고 속여 압수에 동의를 구한 경우와 차량 수색에 동의하지 않으면 차량을 압수하겠다며 강압적으로 동의를 구한 경우 압수수색은 불가능하다

상황2. “지갑은 못봐요”
고용인은 업무 관련 부정 사실을 조사하기 위해 수사기관이 피고용인의 업무 영역에 대해 수색을 요구할 경우 동의할 수 있지만 피고용인의 지갑ㆍ핸드백ㆍ편지 등과 같은 개인 물품의 수색엔 동의할 권한이 없다.
※자료= ‘압수ㆍ수색의 문제점’ 김경도 2005 檢察(통권 제116호)
※그림= 김회룡 기자


관련검색어
정 씨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집에 있던 야구방망이로 구타당했고 컴퓨터.스캐너.사진절단기 등 100여점을 압수당했다. 다음날 무혐의로 풀려난 정씨는 자신의 물건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가혹행위의 증거물인 야구방망이 등 일부 품목은 경찰서 내 쓰레기 소각장에서 폐기처분됐다.(국가인권위원회 2004년 3월 자료)

이같이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수사 주체가 어디든 명백한 불법행위다. 현행범의 경우 현장에서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사후에 영장을 받아야 한다.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수사 기관의 편의상 이뤄지는 영장 없는 압수수색에 대해서는 거부의사를 밝히는 등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L변호사는 "일단 영장부터 확인해야 하고 영장 없이 이뤄지는 압수수색은 거부할 수 있다"며 "이런 행위는 명백한 불법으로 주거침입에 해당돼 신고나 저항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야간 압수수색도 요건에 맞는 특별영장을 따로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일몰 후 ̄일출 전에는 원칙상 가능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형사소송법 제125조 (야간집행의 제한)에 명시된 규정이다. K변호사는 "압수수색은 일종의 강제처분으로, 관련 절차가 수사기관의 편의 위주로 구성돼 있다"며 "일부 검사들은 필요 여부를 떠나 습관적으로 야간집행영장을 청구해 새벽녘 압수 대상자의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은 어떤 상황에서든 수색영장을 제시해야 하며 혐의와 압수수색 취지를 설명해야 한다. 또 압수해야 할 물품이 기록된 압수목록 교부서를 발부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설명과정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고 통상 '해당 업체의 재무장부 일체' 등 포괄적으로 압수목록을 작성해 관련 서류 일체를 가져간다. 이 경우 수사가 이뤄지는 동안 회사 및 개인 업무가 완전히 정지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P변호사는 "영업에 지장을 줄 만큼 압수수색을 해간다면 압수목록을 정확히 교부해 달라고 요청하고 목록에 없는 것을 가져갈 경우 물품 목록을 꼼꼼히 적어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압수물품을 되돌려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의사표시를 할 필요가 있다. K변호사는 "압수수색 후 수사기관에서 압수 품목의 '포기'와 '환부요(還付要 : '압수물품을 되돌려 받기를 원한다'는 뜻)'항목에 지장을 찍도록 요구하는데 꼭 환부요 항목을 확인해 압수물품을 되돌려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압수수색이 진행될 때에는 침착하게 법에 의한 집행에 따라야 한다. S변호사는 "수사기관이 법원에서 발부한 영장을 가지고 압수수색을 한다면 상황에 따라 협조해야 한다"며 "조사를 방해했다든지 협조를 안했을 때엔 범죄혐의가 있는 것으로 불필요한 의혹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압수수색은 긴급상황이기 때문에 피의자 등 당사자 없이도 영장만 있으면 집행이 가능하다. 당사자가 없을 경우 해당 장소에 있는 가족 또는 관계인은 압수목록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당사자가 없을 때 어떤 것이 관련물품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은 압수물에 대해 상실 또는 파손 방지를 책임져야 한다(형사소송법 제 131조). S변호사는 "수사 편의를 위해 컴퓨터를 몽땅 가져가는 경우, 중간 과정에서 프로그램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며 "국가배상법에 따라 공무원의 고의.과실로 인한 손해가 발생했을 때는 소송이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이지은.김윤미 기자]

4. 조사 받을때 


J-Only
수 사기관에 소환돼 신문을 받게 되면 혐의가 있고 없음을 떠나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형사소송법에선 불리한 진술에 대해 진술 거부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하거나 수사기관을 자극해 신문조서(訊問調書)에 악영향을 끼칠까 두려워 대부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다년간 수사 경험이 있는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수사기관에 소환된 피조사자(또는 잠재적 피의자)들은 심리적 압박감이 커'을(乙/피의자를 지칭,수사기관은 갑)'의 심정으로 끌려가기 마련이라고 지적한다.

어떤 대응이 최선일까. 변호인을 선임한 경우 변호사와 접견할 때까지 함부로 입을 열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 검사 출신 P변호사는"변호인 접견권은 헌법에 보장된 피의자의 권리"라며 "자신을 둘러싼 수사 상황을 파악할 때까지 변호인을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또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경우엔 일단 자신의 진술과 다르거나 다른 의미로 해석될 여지를 열어둔 조서엔 도장(지장으로도 대체됨)을 찍지 않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검사 출신 K변호사는 "현행 사법처리 단계에서 법원은 도장이 찍힌 조서만 증거 능력을 인정해 왔다"며 "증거 없이 진술과 주장만으로 조서가 작성됐더라도 피의자의 도장이 찍히면 객관적 증거능력을 갖게 되는 게 지금까지의 형사소송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도장을 찍기 전에 자신에게 유리하게 생각되는 진술이 반영됐는지 확인하고 왜곡 또는 확대 해석 여지 없이 작성됐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며 "이런 와중에서도 변호인 선임 노력은 계속 되어야하며 도장을 찍어야 한다면 변호인과 1차적인 상의 절차가 꼭 선행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P변호사는 "사람이 긴박한 상황에 처하면 쉬운 것도 못 보기 마련"이라며 "심한 경우엔 얼이 빠져 간단한 문장도 독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신문 과정에서 유의할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사기관은 긴급체포한 뒤 48시간 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 수준의 조사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조사 초기에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 피조사자를 압박한다.

형 사정책연구원의 '피의자 인권침해 현황조사(2004년/구치소 수용자 179명 대상)'에 따르면 경찰의 경우 '형량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며 협박과 회유를 했다고 답한 수용자가 53.7%로 가장 많았다. 이어'혐의 내용 변경'(25.7%).'혜택의 박탈'(10.1%).'가족 및 지인에 대한 불이익'(7.3%).'폭력 위협'(3.4%)순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혐의 내용이 자신과 무관하다면 이런 회유와 협박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S변호사는"수사의 프로들 앞에서 심리적 평정을 유지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지만 지레 자포자기 하지 말고 근거 있는 경우만 해명한다는 자세로 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환된 피조사자들은 수사기관이 무엇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혐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를 둘러싼 진실 이외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것이다. S변호사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정당하고 적법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진술을 쏟아내지만 이는 아마추어의 만용에 불과하다"며 "수사기관에서 물증을 제시하는 범위에 한해 진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조사자의 방어적 진술과 관련 S변호사는 "죄가 없는 경우 억울한 심정에 더 흥분할 수 있다"며 "평정을 잃은 상태에서 괜히 말 잘못했다가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수사기관의 신문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도 참고할 만한 대응책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묵비권을 펴면서 변호인에게 자신이 혐의가 없음을 적극 알려야 한다는 것.

이 경우 변호인은 소견 형식의 의견서를 첨부해 의뢰인의 입장을 전달한다. 다만 변호인의 도움 등 자신을 방어할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술을 거부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하면 검찰.법원에서 피의자가 범죄를 숨기려 한다는 심증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S변호사는 조언했다. 검사 출신 P변호사는 "조사에 임할 때는 일관되게 처신해야 수사기관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며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변호사의 도움을 받고 진술을 하는 것은 별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지만 진술을 하다 거부를 하면 수사에 비협조적이라는 인상과 함께 조서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행범인 경우엔 묵비권이 오히려 불리하다. 현장의 물증과 증인들이 있기 때문에 죄질만 나빠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5. 구속됐을때






몇 해전 길에서 술에 취한 여성을 부축해 깰 때까지 지켜본 뒤 명함을 주고 귀가한 카드회사 직원 A씨는 성폭행 미수 혐의로 다음날 경찰에 불려갔다. 그는 어떠한 성 접촉 시도도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경찰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의 진술에 근거해 사건을 구성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검찰에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했지만 결국 구속됐다.

구속 후 변호사를 만난 A씨는 사건 경위를 설명하며 무혐의를 주장했지만 이내 딜레마에 빠졌다. 억울하다는 자신의 누명을 풀기 위해선 반대 증거를 내놓고 재판에서 무죄를 입증해야 하지만 확정 판결까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2년여가 걸리는 시간이 문제였다. 구속 상태이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소송 비용 등 경제적 부담도 고려해야 했다. 결국 수사기관의 혐의 내용을 수용한 A씨는 피해자와 합의한 뒤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구속(拘束)은 도주 및 증거인멸을 막고 형사소송의 진행을 위해 피의자의 신체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는 형사소송 절차의 한 과정이다. 따라서 구속이 곧 처벌이라든가 유죄 선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속이 갖고 있는 강력한 효과와 사회적 상징성 그리고 법 전문가인 검사와 판사가 한 차례씩 사법적 고려와 판단을 했다는 점 때문에 일반인의 뇌리에 '구속=처벌'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A씨의 사례처럼 구속이 되면 재판에서 잘잘못을 따지기 앞서 사회 생활 보호 문제로 현실적 타협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구속은 한 사람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중대 사건이다. 검사 출신 P변호사는 "구속이 되면 이전 조사과정에서 피조사자가 막연하게나마 가졌던 '수사기관과 동등한 위치에서 조사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사라진다"며 "이 때부터 사실상 피해자의 말이 조사 과정 내내 '법'이 되고 피의자들은 대개 무장해제됐다는 심리적 공황에 빠지곤 한다"고 말했다. 빨리 조사받고 수사기관에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할수록 심리적 타격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A씨가 구속을 면할 방법은 없었을까. 검사 출신 L변호사는 "A씨는 피해자의 주장을 반박할 반대 증거를 거의 제시하지 못한 채 결백 주장만 반복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서에서 조사받는 그가 현장 주변에서 반대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방법은 관련 사건에 경험이 많은 사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길 뿐이다. 하지만 A씨는 구속이 결정된 뒤에서야 변호사와 처음 접견했다.

'당신이 수사받는다면'시리즈가 나간 뒤 일부 네티즌은 "유전무죄란 말인가. 변호사 없이 수사를 받는 방법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지방의 한 검사는 "상식선상에서 죄가 안된다고 생각하는 일도 법 전문가의 관점에선 사건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사건 관계자들은 자기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하는 성향이 강해 결백을 주장한다"며" 하지만 그것이 다른 관계인(피해자)의 법익(法益)과 충돌하기 때문에 법률적 관점에서 유죄 여부를 따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듯 수사는 상식 관점이 아니라 법적 시각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다. 사건의 계기가 된 또 다른 당사자(피해자)가 강력하게 피의자에게 불리한 주장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방어할 반대 증거와 그 효용성에 대해 상의할 법률 전문가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검사도"몸이 아플 때 의사의 진찰이 없으면 육체적 생명이 끊기고 피의자가 됐을 때 변호사 선임을 제때 하지 않으면 사회적 생명이 끊기게 된다"며 "구속이 될지 여부를 계산하다 구속이 임박하거나 결정난 순간에 변호사를 부르면 이미 늦는다"고 말했다. K변호사는 "소환 때든 구속 절차가 진행 중일 때든 어느 시점에 사건을 맡아도 수임료는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금태섭 검사도 한 신문에 실린 기고에서"직업적인 범죄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수사를 받는 것은 일생에 몇 번 없는 일이다. 중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해 훌륭한 변호인을 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사는 당사자와 상대방 그리고 수사기관이 관계된다. 삼자(三者)의 시각이 엇갈리고 마찰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되도록 조사 초기부터 법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강조점이다.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법원에서 발부 여부를 판단한다. 사안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인 형사사건은 3 ̄4시간이면 발부 여부가 결정된다.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이 시간에도 반대 증거를 찾는 노력을 계속해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구속 전 피의자 신문(영장실질심사)'때 제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영장실질심사제도는 수사기관이 청구한 구속영장의 요건이 적법한지를 가리는 제도로 모든 사건에 적용된다.

실질심사를 거쳐 구속영장이 발부되더라도 반대 증거가 확보돼 수사기관의 혐의에 논란의 여지가 생기면 구속적부심을 신청해야 한다. 적부심은 구속된 피의자에 대해 법원이 구속의 적법성과 필요성을 심사해 타당성이 없으면 피의자를 석방하는 제도다.

S변호사는 "현실 여건상 영장실질심사나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할 경우 새로운 반박 자료가 없는 한 구속집행을 번복하기는 힘들지만 이런 노력조차 안하는 피의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다 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장실질심사와 구속적부심사가 모두 기각됐다면 피의자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P변호사는"구속이 확정되면 피의자는 재판을 통해 새로운 증거나 정황을 제시해 무죄판결을 받는 노력을 계속하느냐, 아니면 수사기관의 혐의 내용을 수용해 정상참작을 기대하느냐 두가지 방안 가운데 선택을 해야 한다"며 "변호사는 의뢰인의 입장에서 어떤 판단이 도움이 되는지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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